mono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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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영화에 항상 등장하는 대사가 있다. “나도 나를 모르는데, 네가 날 어떻게 알아?”. 나는… 나는 뭘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선생님은 항상 나를 보고 어떻게 그렇게 무던하냐며 부럽다고 했다. 나는 무던한 사람인가? 아니, 나는 우울감에 사무치면 우주 끝까지 닿을 정도로 멀리 사라지고싶은 사람이다. 말 한 마디를 잘못하면 부끄러움에 못 이겨 밤을 지새우며 심장이 쿵쿵댔던 하루를 이불에 꽁꽁 싸매 멀리 차서 날려버리고싶은 사람이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 부담스러움을 잔뜩 주고서는 돌아서서 땅을 치며 후회하는 사람이다. 한편으로는 무던한 면도 있긴 하다. 누군가 나를 무참히 때리고 상처를 내도 나는 그에게 화를 내지 않을 자신이 있다. 무언가 잘못돼 아무리 압박감을 받는 상황에서도 스트레스 받지 않을 수 있다. 오늘을 열심히 살되,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사람 일이란 게 다 그렇듯 모든 게 뜻대로 흘러가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빙글빙글 돌아 여기까지 왔다. 내가 살아온 길을 쭈-욱 따라 걷다보면 너무 구불구불해서 나조차도 길을 잃을 지경이다. 순간의 선택에는 그것이 최선이 아닐지라도 감정의 이끌림에 속아 넘어갔던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순간들이 지금의 나를 구성하고있다. 돌이켜 보면 나름 죽지 않고 잘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살아왔지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아직은 살고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오직 그뿐이다. 어떻게 살아가느냐, 내가 누구냐는 지금 살고있는 삶 앞에서는 결코 중요하지 않다. 나는 살아왔고, 여전히 살아있고, 살아갈 예정이다.

밥 잘 먹고, 잘 자고. 모두가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사랑하고 안아주고 기뻐하면 좋겠다. 다들 아직은 살아있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