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는 죽음에 대해 참 잘 아는듯하다. 세 번을 시도하고, 마지막 한 번의 시도에서 목뼈가 부러져 자칫 장애인으로 평생을 살아야했던 그 친구는 마치 세상을 통달한듯 보였다. 새 삶이 찾아온 느낌은 아니라고한다. 오히려 어린시절 가족과 절연했을 때야말로 새로운 삶이 찾아왔다한다. 그 친구가 참 부럽다. 나는 죽음 앞에 바로 서 본 사람을 왜 그렇게 부러워할까. 마치 더이상 세상에 원하는 것도 없으며 필요한 것도 없는 초연한 상태라고 느끼기 때문일까. 물론 정 반대라는 걸 잘 안다. 어린 시절, 가장 좋아하는 카메라 스트랩을 천장에 매듭짓고 침대에 앉아 몇 시간이고 망설였던 기억이 있다. 죽음을 결심하는 한편으로 자살은 삶에 대한 맹목적인 긍정의 표현이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이 떠올랐다. 그저 맹목적으로 살아있고싶었다. 너무나도 좋은 삶을 살고싶은 나머지 그대로 콱 죽고싶었던 것이다. 어쩌면 아직까지 망설이고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아무 것도 없는 삶이라는, 무의 유령이 나를 붙잡고있다. 나의 두 다리를 꽉 붙잡고 얼른 오라고 부르는듯하다.
존재가 나를 흔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내게 아무 것도 없기때문에 힘없이 흔들린다. 거리를 걸으면 누구나 어떤 것이든 지닌듯하다. 열심히 걸어가는 사람도, 어디로 가는지 모를 자동차들도, 높다란 서울의 빌딩들도 모두들 잘 사는 세상에 나 혼자만 가족도 연고도 없이 동떨어진 기분이다. 점차 말은 사라지고 행동만 남는다. 그 행동조차 내 방의 극히 일부에 한정돼있다. 내가 가장 나다운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예전처럼 열심히 음악을 듣지도, 영화나 만화를 보지도, 책을 읽지도 않는다. 내 모습은 점점 지워지고있다. 사람을 대하는 방식도 이제는 전혀 모르겠다. 사랑하는 방법을 겨우 알았다고 생각했던 때, 내가 사랑했던 건 사랑을 깨달았다고 착각하는 나였고 내가 누군가 사랑하고있지는 않았다. 사랑 없이 외치는 말들이 쇠붙이처럼 시끄러운 소리만 내고있다. 결국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의 말로는 처량하고 비루한 것이다.
‘행복은 하룻밤 늦게 찾아온다’라고 했던가. 행복을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끝내 지쳐 집을 뛰쳐나왔는데, 다음 날에야 넘치는 행복의 소식이 버려진 집에 찾아왔으니 때는 이미 늦었다. 행복은 하룻밤 늦게 찾아오는 거다. 행복은……
- 다자이 오사무 『여학생』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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