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아니, 모든 생명체의 끝은 죽음이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듯 죽음은 삼라만상 불변의 진리다. 흔히들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죽음 그 자체가 아닌 삶에의 의지에 집착하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한다. 다시 말해 생을 위해 사를 거부하는 것이다. 또다시 말하자면 생에 대한 집착을 거두면 사에 대한 두려움은 자연히 소멸한다. 결론적으로 죽음 이전에 사는 것에 대한 판단이 항상 선행할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는 자살을 이해할 수 있다.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사람들은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게 아니라 삶이 두려운 것이다. 과거는 고통의 연속이었고, 현재는 고통스러우며, 미래에 고통이 예정되어 있다면 무의 상태로 나아가는 것이 고통인 상태보다 나을 수 있다. 결국 자살은 자신이 원하는 삶에의 의지에 대한 극한의 긍정이며 고통의 거부다. 그렇기에 자살에 대해 도덕적 접근과 형벌은 어떤 기능도 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누가 그들을 자살로 이끌었을까. 그것이 가장 큰 문제다. 극단적 허무주의자가 아니라면 삶에 대한 긍정이 자살로 표현되는 것은 최악의 상황이란 것에 공감할 것이다. 우리는 자살 시도를 말릴 것이 아니라 자살의 원인, 그러니까 우리의 삶에 깊게 박혀있는 부조리를 찾아 없애야 한다. 자비를 구하고 자비를 행하고 남을 위해 울고 웃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랑을 외워야 한다. 언젠가 더 나은 세상이 오기를 바라면서.
“의지의 부정과는 아주 거리가 먼 이러한 자살은 의지를 강력하게 긍정하는 현상이다. 부정의 본질은 삶의 고통이 아니라 삶의 향락을 혐오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자살자는 삶을 원하지만, 그가 처한 삶의 조건에 만족하지 못할 뿐이다. 그 때문에 그는 결코 삶에의 의지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현상을 파괴하면서 단지 삶만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는 삶을 원하고, 신체의 방해받지 않는 생존과 긍정을 원하는 것이다.” - 쇼펜하우어 『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