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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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매년 딱 한 번 만 쓰게 되는 것 같은 모놀로그. 그래도 최근 나에게 큰일이 있었던 건 분명하다. 우선 건강이 크게 안 좋아져서 온종일 방에 갇혀 요양하는 시간을 보냈다. 끼니를 챙길 힘조차 없어 몰골이 굉장히 수척해졌다. 정신적으로도 내가 뭘 위해 이러고 있는지, 왜 남들의 눈치를 보고 신경 써야 하는지를 매번 고민했다. 병원 몇 군데를 다녀도 윤동주의 그 말처럼 늙은 의사는 나의 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가장 친한 친구에게 문자를 한 통 남겼다. “내가 내일 연락이 없다면, 대신 신고해 줘”. 1인 가구의 사회적 문제는 아무래도 고독사니까. 다행이라 해야 할지 그 뒤로 몇 주 더 아프다가 지금은 많이 나아진 상태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 윤동주 『병원』 中 -

올해는 나에게 도전의 해였다. 뭐라도 해보고 싶었고, 무엇이든 시도했다. 그런데 잘할 수 있을 것이란 연초의 자신감이 무색하게 일이 뜻대로 흘러가진 않았던 것 같다. 한해를 돌고 돌아 결국 제자리로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현실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활동 해온 기억도 이젠 희미해져 간다. 내 뜻을 이루려면 더 큰 꿈을 꾸어야 한다는 생각에 지금의 내가 사라지고 있는 기분이다. 나는 분명히 삶에 대한 믿음을 잃고 있다. 누군가가 나를 더는 움직이지 못하게 꽉 붙잡고 어디론가 이끌어 주었으면 좋겠다. 차라리 하느님에게 나를 투신하여 그분이 이끄는 길만 따라가고싶다. 신앙심을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건 그런 의미에서 불행이다.

이런 상황일수록 항상 곁에 있어 준 사람들이 생각난다. 과거의 일도 떠오른다. 모두 잘 살고 있는지, 괜찮은 건지. 가슴 깊은 곳에 묻어 둔 이야기는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를 알아주던 사람들. 안아주던 사람들.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될 순 없는 걸까. 표현할수록 멀어지고 표현하지 않으면 모르는 현실에 그 사람들의 사랑이 나에게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다시금 깨닫는다.

내년의 나는 올해의 나와 크게 다를 게 없을 것이다.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날짜라는 건 결국 사람이 만든 체계에 불과해 연속적인 날들이 마치 연 단위로 끊겨 나를 바꿀 수 있는 선처럼 여기게 만든다. 다만 나는 조금씩 알아가는 게 있고, 세상은 조금씩 변해간다. 그 방향이 내가 추구하는 삶에 맞닿아 있길 바랄 뿐이다.


war is over if you want it happy christmas from john & yoko